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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rs > Wei Man

Wei Man (衛滿 Pinyin : Wei4 man3 Wiman/위만 in Korean ) was a Chinese general who established the Wiman Joseon kingdom in northwestern Korea in the 2nd century BC. He was the first figure in the history of Korea who was recorded in documents of the sam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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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rs > Tangun

Dangun is the mythical founder of Korea . The oldest existing record of the foundation myth involving him appears in the Samguk Yusa , a 13th-century collection of legends and stories. Story Dangun's ancestry begins with his grandfather Hwanin (환인; 桓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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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icles

Hwandan Gogi is considered as a blasphemy, which describes Korean history back to 8th millennium BC : KOREA AS A GRAND EMPIRE ??? This segment is written here to introduce the alternative view of Korean history held by various historians outside the main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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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r Diary of Admiral Lee/ 난중일기

1592年 임진년 (선조 25년 : 서기 1592년(48세))/ 1592년 1월 1일 ∼ 8월 27일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전(신묘년)에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한 충무공은 미구에 왜란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좌수영 관할 아래 모든 군사를 훈련시키고 장비도 보강 하는등 온갖 방비를 주력하였다. 임진년 4월 12일에 거북선을 완성 시범 항해를 하자 하루뒤인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 다. 공은 전선 24척을 모아 5월 4일 출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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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상 전 투

여수와 임진왜란 I. 여수와 임진왜란 여수지방의 역사는 아주 옛날 삼국시대부터 밝혀지고 있으나, 여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생긴것은 고려가 건국해서 전국의 지명을 바꿀때 부터였다. 그러나 여수지방은 경지면적이 협소하고 인구가 희소하여 삼국시대부터 순천의 속현으로 내려왔는데 여수현령이 처음으로 임명된 것은 고려말 충정왕 2년(l350)이었다. 그러나 이 억수현령시대도 겨우 43년간 계속되다가 이성계가 건국 한 후에는 반역향이라하여 억수현마저 폐현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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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해전

제 1 차 출동 (5월 4일부터 5월 9일까지 ) 진해루 군사회의의 결정에 따라 전라좌수군은 5월4일부터 5월 9일까지 제1차 출동을 하 고 있는데, 이 기간에 전라좌수군은 옥포해전에서 적선 26척,합포해전에서 5척 그리고 적진 포해전에서 11척등 합계 42척의 적선을 당파 또는 격침시키고 있다. 제1차출동은 전과에서 도 대단한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보다도 우리전라좌수군에게 전쟁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주 었고, 해전에서의 자신감을 얻게 하는데 큰 의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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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해전

제 2 차 출동 (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제 2차 출동은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11일간의 출동이었는데, 이번출동에서는 사천 해전에서 13척, 당포해전에서 21척 당항포해전에서 26척, 그리고 율포해전에서 7척등 합계 67척의 적선을 격파하고 있다. 원래 제2차출동은 6월 3일부터 전라우수군과 함께 출동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 6월 27 일 원균의 급보로 계획이 앞당겨져서 전라좌수군의 단독출전이 되었고, 또 거북선이 처음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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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해전

제 3차 출동 (7월 5일부터 7월 13일까지) 왜적이 제 l차 및 제2차 출동의 7번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자 이 소식은 일본의 풍신수 길에게 보고되었고, 수군참패의 소식을 들은 풍신수길은 조선의 이순신함대를 격파하라는 특명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육상전투에 참가했던 협판안치가 용인에서 웅천으로 내려와 흩어진 수군을 정비하였고, 구괴가륭과 가등가명등 내노라하는 왜적의 수군장수들이 새로운 전선을 이끌고 조선으로 나와 이순신 타도를 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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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해전

제 4 차 출동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한산도해전후 풍신수길의 특명으로 왜적들이 부산 서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순신수사는 마지막 목표 부산공략에 나서니 이 출동이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진행된 제4차 출동이었다. 이 기간동안 조선수군은 장림포해전에서 6척, 다대포해전에서 24척 , 그 리고 부산포해전에서 약 100여척을 격침시키고있는데, 이때의 조선수군의 함대세력은 173척 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측 전투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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