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해전

Publié le par Tiger LEE

제 3차 출동 (7월 5일부터 7월 13일까지)

왜적이 제 l차 및 제2차 출동의 7번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자 이 소식은 일본의 풍신수 길에게 보고되었고, 수군참패의 소식을 들은 풍신수길은 조선의 이순신함대를 격파하라는 특명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육상전투에 참가했던 협판안치가 용인에서 웅천으로 내려와 흩어진 수군을 정비하였고, 구괴가륭과 가등가명등 내노라하는 왜적의 수군장수들이 새로운 전선을 이끌고 조선으로 나와 이순신 타도를 외치게 되었다. 그래서 6월말부터는 왜적들이 10여척 또는 30여척씩 떼를 지어 거제근방에 출몰 한다는 원균의 소식을 들은 이순신 수사는 곧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출동할 것을 재우하고 드디어 전라좌우수군 연합함대는 7월 5일부터 7월 l3일까지 제3차 출동에 오르게 된다. 이번 출동에서 우리함데는 그 유명한 한산도해전에서 59척 안골포해전에서 30척 등 모두 89척의 적선을 격파하는데 제3차 출동은 그 전과도 엄청날 뿐아니라 풍신수길이 마지막 제 해권을 장악하려는 의욕을 꺾어 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전투에서 마저 패하자 풍신수길은 주인장제48호를 다시 내려서 일본 수군은 부산 서 쪽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제3차 출동때의 전라좌수영함대 편제는 다음과 같다.

중 위 장 순천부사 권    준 좌별도장 군 관 윤 사 공
전 부 장 방답첨사 이 순 신 우별도장 전 만 호 송 응 민
후 부 장 흥양현감 배 흥 립 유 군 장 발포만호 황 정 록
좌 부 장 낙안군수 신    호 한 후 장 전 봉 사 김 대 복
우 부 장 사도첨사 김    완 참 퇴 장 전 첨 사 이 응 화
중 부 장 광양현감 어 영 담 좌돌격구선장 급 제 이 기 남
좌척후장 녹도만호 정    운 우돌격구선장 군 관 이 언 양
우척후장 여도권관 김 인 영

 

1) 한산도 해전 (7월 8일)

7월 5일 여수를 출발한 전라좌우수영함대가 7월 8일 적이 출동한다는 견내량에 이르러 보니 76척이라는 적의 대함대가 전투준비에 부산하였다. 이때 우리측 함대의 수는 전라좌수 군이 24척, 전라우수군이 25척, 그리고 원균이 이끄는 경상우수군이 7척으로 합계 56척 이었 다.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반도 사이에 있는 긴 수로로서 길이는 약 4Km에 달하며 넓은 곳이라야 600m를 넘지않는 좁은 해협이다. 이순신 수사가 생각컨데 이 수로는 지형이 너무 협착하고 또 암초가 많아서 싸움터로서는 부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해 전 경험으로 볼때 육지와 너무 가까운 곳에서 싸우노라면 왜적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 망가는 일이 빈번하였으므로 이번만은 넓은 바다에서 왜적의 배는 물론 왜수군들까지도 모 조리 잡을 계획을 세웠다.

[ 제 3 차 출동도]

그래서 3도수군은 일부러 후퇴를 가장하여 후퇴하자 왜적들은 의기양양하게 한산도앞바다 까지 뒤쫓아 왔다. 이 바다는 상당히 넓은 곳이기도 하지만 만일 왜적 들이 배를 버리고 한 산도로 도망간다하더라도 한산도는 조그마한 섬이므로 도망가지 못하리라 생각한것이다. 이순신 수사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일향포성이 온 바다를 울리고 청룡기가 세개씩 올라 간 후 나팔과 북이 천지를 진동하자 지금까지 후퇴 하던 3도수군은 일제히 뱃머를 돌리고 학익진을 형성하먹 적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북선이 종횡무진으로 적진을 유린 하고 모든 장졸들이 온힘을 다하여 쏘아대니 왜적들은 기가 꺾이어 전의를 잃고 도망가므로 전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되고 말았다. 적선 73척중에서 69척이 나포 또는 격파되고 물 에 빠진 수 많은 적군은 익사하거나 한산도로 도망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한산대첩의 전모이고 임진해전사의 분수령을 이룬 득의의 대승리였다. 그러므로 한산도 해전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미국인 Hulbert박사는[Modern Histo ry of Japan] 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한산대첩은 조선에 있어서 사라미스해전이라 일컬을수 있 다. 이 해전이야말로 풍신수길의 조선침략에 대하여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평가하 였다.

2) 안골포 (7월 10일)

한산도 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둔 조선수군은 하루를 휴식한 다음 7월10일에는 안골포에 남 아 있는 적을 소탕하러 나섰다. 안골포 해전에 임한 이순신수사는 작전계획을 다음과 같이 세웠으니, 전라우수군은 가덕쪽 안골포 바깥 바다에 포진하여 혹 부산방면에서 올지도 모를 적의 구원함대를 경계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복병선만 남겨두고 전투에 가담하도록 하고 안골포공격은 전라좌수군이 담당하되 전투능력이 없는 경상우수군 원균함대는 전라좌 수군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였다. 안골포에 이르러보니 적선 42척이 정박하고 있는데 포구의 지세가 좁고 얕아서 많은 배 가 전투하기가 매우 불편하였는데 왜적들은 모두 육지로 올리가서 대항하고 있었다. 넓은바 다로 유인하려 애를 썼으나 그들은 이미 한산도패전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터라 정면으로 싸우려 들지 않았으므로 이순신수사는 파상공격의 작전을 택하였다. 전함대가 서로 교대하여 종일토록 공격하여 적선 30척을 불사르고 해질무렵에 철수하였 다.

Sources :

http://bora.dacom.co.kr/~winwin3/p2/bat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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