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해전

Publié le par Tiger LEE

제 4 차 출동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한산도해전후 풍신수길의 특명으로 왜적들이 부산 서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순신수사는 마지막 목표 부산공략에 나서니 이 출동이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진행된 제4차 출동이었다. 이 기간동안 조선수군은 장림포해전에서 6척, 다대포해전에서 24척 , 그 리고 부산포해전에서 약 100여척을 격침시키고있는데, 이때의 조선수군의 함대세력은 173척 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측 전투함은 전라좌수군이 24척, 전라우수군 25척 그리고 경상우수군이6 척등해서 대략 55척 전후의 함대세력이었는데 제4차출동에서는 거의 3배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필자가 생각컨데는 갑자기 전투함이 증가될 수는 없 는 일이고 너무 장거리의 출동이라 보급품등의 수송을 위하여 비전투함인 소형 협선이나 고 기잡이 배인 포작선까지 모두 동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4차 출동의 전라좌수영함데 편제는 다음과 같다.

중 위 장 순천부사

전 부 장 방답첨사

좌 부 장 낙안군수

우 부 장 녹도만호

좌별도장 우 후

구선돌격장 군 관

권     준

이 순 신

신     호

정     운

이 몽 구

이 언 량

증 부 장 광양현감

후 부 장 흥양현감

좌척후장 사도첨사

우척후장 여도권관

우별도장 전 만 호

유 군 장 발포만호

한 후 장 전 봉 사

참 퇴 장 전 첨 사

구선돌격장 급 제

어 영 담

배 홍 립

김     완

김 인 영

송 응 민

황 정 록

김 대 복

이 응 화

이 기 남

( 이 상 확 인 )

( 이 상 추정 )

이번 부산포 해전은 얼마나 치열하였던지 이 전투중에 녹도만호 정운장군이 전사하여 4 차례 출동에서 처음으로 고급지휘관이 전사하고 있다.

[제 4 차 출동도]

1) 장림포 해전 (8월 29일)

8월 24일 오후 4시경 여수를 출발한 전라좌우수영함대 l66척은 당포에서 경상우수군과 합류한 다음, 8월 29일 낙동강 하류에 도착하였다 낙동강 어구를 수색하던 중 양산강쪽 장림포에서 왜선 6척을 만나 이를 가볍게 불태워버리고 계속 근방을 수색했으나 더 이상 적을 발견할 수 없어 가덕도 북쪽으로 회향하여 밤을 지냈다.

2) 다대포 해전 (9월 1일)

3도수군은 9월 l일 첫닭이 울때 가덕도를 출발하여 아침 8시경에 화준구미에서 적선 5척, 다대포에서 8척 , 서평포에서 9척, 그리고 절영도에서 2척등 모두 24척을 남김없이 격파 하고 계속 절영도 안팎을 샅샅히 수색하였으나 적의 종적이 없으므로 곧장 부산 앞바다로 향하였다.

3) 부산 해전 (9월 1일)

먼저 척후선을 보내어 적정을 살피게 하였더니 대개 500여척의 적선이 선창과 해안에 줄 지어 정박하고 있다는 보고를 해왔다 이순신수사는 곧 이억기, 원균수사와 약속하기를 <우리 함대가 이미 노출되어 있는데 만일 위세를 가지고 지금 공격하지 않고 다른 해전때처럼 유인전술이라도 쓴다면 적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하고 독전기를 높이 휘두르고 북을 두드려 장사진을 짜고 정공법으로 진군하였다. 우리 수군의 위세에 눌린 500여척의 왜적들은 감히 나와 싸우지도 못하고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총, 화살, 편전 그리고 철환을 비오듯 쏘아대는데 왜적들 속에는 포로가 된 조선병정들도 섞여 있어서 우리 수군들을 가슴 아프게 하였다. 이 부산해전이 얼마나 치열하였든지 충무공은 그의 [부산파왜병장]에서 다음과 같이 장계하고 있다.

그동안 4차례 출전하고 l0억회 접전하여 모두 승첩하였으나 만약 장수와 사졸들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보다 더한 싸움이 없겠습니다.

전일의 전쟁때에는 적선의 수가 많아도 70여척 미 만이었는데 이번은 큰 적의 소굴속에서 500여척과 종일토록 접전하여 적선 1백여 척을 깨트리고 적으로 하여금 겁내어 떨게하였으니 비록 목을 벤 것은 적으오나, 힘껏 싸운 장졸의 공로는 먼저번 어느 싸움보다 훨씬 더 하였습니다.

어떻든 이번 부산해전에서 왜적들을 완전 소탕하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의 본거지를 위협하여 왜적들의 돌아갈 길을 염려케하였으니 왜적들이 이제는 연해안 약탈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위대한 승리의 종합결과

지금까지 서술한 4차례출동, 12번의 해전상황을 종합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이 표와 다음에 나오는 피해대비표, 그리고 전 사상자명단은 모두가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의 장계에 의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자연히 전라좌수군의 것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전라우수군이나 경상우수군의 전과는 그들의 수사였던 이억기나 원균의 장계에 나타나 있겠지만 이 두사람의 장계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서 알수가 없다. 단지 이 양도 수군의 전과가 전라좌수군의 전과에는 도저히 따라올수 없는 것이었으리라고는 짐작이 간다.

그리고 전상자의 명단은 너무 번잡하므로 일일이 적지 않고 인원만 표시하였으나 전사자의 이름을 여기 밝혀 둔것은 이들에 대한 전몰위령탑이라도 꼭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라좌수군의 승리가 물론 불출세의 영웅 충무공의 탁월한 지휘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충무공 휘하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여수 지방의 수졸들 특히 여기 기록한 전사자들의 전공에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전사자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이름없는 하급수병이거나 노비들이니 이들의 넋을 달래줄 곳은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전라좌수영함대전과일각(임진해전분) (단위:척)



※전라좌수군만의 전과임. (충무공 장계에 의거)

임진해전양국(조선·일본)피해대비표


※ 본 표중 조선측이라함은 전라좌수영만을 중심으로 함

Sources :

http://bora.dacom.co.kr/~winwin3/p2/bat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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