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해전

Publié le par Tiger LEE

제 2 차 출동 (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제 2차 출동은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11일간의 출동이었는데, 이번출동에서는 사천 해전에서 13척, 당포해전에서 21척 당항포해전에서 26척, 그리고 율포해전에서 7척등 합계 67척의 적선을 격파하고 있다.

원래 제2차출동은 6월 3일부터 전라우수군과 함께 출동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 6월 27 일 원균의 급보로 계획이 앞당겨져서 전라좌수군의 단독출전이 되었고, 또 거북선이 처음 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제2차출동에서는 군선의 피해는 없으나 전사자가 13명이나 나오고 전상자도 36명에 이르게된다.

제2차 출동때의 주요 함대 편성은 다음과 같다.

중 위 장 순천부사
권     준
우 척 후 장 사도첨사
김     완
전 부 장 방답첨사
이 순 신
구선돌격장 급 제
이 기 남
후 부 장 흥양첨사
배 홍 립
좌 별 도 장 우 후
이 몽 구
좌 부 장 낙안군수
신     호
우 별 도 장 여도권관
김 인 영
우 부 장 보성군수
김 득 광
한 후 장 본영군과
가 안 책
중 부 장 광양현감
어 영 담
참 퇴 장 전첨사
이 응 화
좌척후장 녹도만호
정     운

1) 사천 해전 (5월 29일) 적선수 10척이 사천, 곤양등지 까지 쳐들어 왔다는 원균의 급보를 받은 전라좌수영 함대 는 5월 29일 새벽 척수를 출발하여 남해노량에 도착하니 원균은 다만 3척의 전선을 이끌고 대기하고 있다가 전라좌수영 함대를 보고 달려와 왜적이 사천선창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제 2 차 출동도]

함대는 쉬지 않고 노를 재촉하여 사천선창에 도착하여 보니, 산이 선창을 둘러싸고 7,8 리나 뻗혔는데 형세가 험준한 곳에 왜적들이 수백명씩 진을치고 계획적으로 대항할 태세였 으며, 바다에는 12척의 적선이 정박해 있는데 배에도 적도들이 늘어서서 소리를 지르고 야 단들이었다. 이순신수사가 상황을 판단하건데 바다가 얕고 벌써 썰물이라 판옥선같은 큰 배 가 쉽게 돌진할 수 없고, 날도 또한 어두워가니 무모한 공격을 피하라고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적들이 몹시 교만한 태도를 가졌는데 우리가 만일 짐짓 물러나면 저놈들이 반드시 배 를 타고 나와 우리와 싸우려고 할 것이니 우리는 적들을 한바다로 끌어내어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다." 함대가 뱃머리를 돌려 10리도 못나와 이순신수사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왜적들이 모두 산에서 내려와 배에 갈아타고 우리함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이무렵에는 저녁 조수도 밀려들어 큰 배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전라좌수영함 대는 일제히 뱃버리를 돌려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천해전에서 그 유명한 거북선 이 처 음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그 용맹을 떨치는데 이 사천해전이 얼마나 치열하였던가는 충무공 의 당포파왜병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거니와 충무공은 이 전투에서 왼쪽어깨에 조총을 맞 아 그 후 이 상처 때문에 수년을 고생하게 된다. 왜적의 배 12척을 모조리 불살은 후 사천 땅 모자랑포로 이동하여밤을 세웠다.

2) 당포 해전 (6월 2일)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전라좌수영함대는 모자랑포를 출발하여 고성땅 사량도에서 하룻밤 을 더 보낸 후, 전선이 당포선창에 정박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6월 2일 아침 8시경에 사 량도를 출발하여 10시경에 당포에 이르니 적선 21척이 정박해 있고 왜적들은 육지에 상륙하 여 조총을 쏘아대며 저항하려 하였다. 공격의 나팔과 북이 울리자 함대는 거북선을 앞세우고 당포 포구안으로 진격하척 붉은 비단휘장을 들어친 대장의 배를 먼저 깨뜨리고 바다에 떨어진 장수인듯한 자의 목을 베니, 왜적들은 갈팡질팡 겁을 내어 도망치는데 총에 맞고 화살에 맞은 자들의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함대는 공격을 늦추지 않고 엄습하여 포구안에 있던 적선 21척을 모조리 격침시키 고, 그 근처에서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인 6월 3일에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전선 26척을 거느 리고 위풍도 당당히 당포에 나타났다. 전라좌수군은 함성을 지르며 우군을 맞이했고 기뻐 어쩔쭐 몰랐다. 이렇게 되어 전라 좌우수군의 연합함대가 편성됐고, 앞으로 할 모든 전투에서 전라좌우수군은 항상 함께 출동 하여 대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3) 당항포 해전 (6월 5일)

연합함대를 편성한 전라좌우수군은 하루를 작전회의로 보낸 다음, 당항포에 적이 있다 는 보고를 받고 즉각 출동하였다 당항포에 이르러 그 곳 지형을 살펴본 즉 포구가 20여리나 깊숙히 들어가 있으나 그 폭이 넓어서 전선이 들어갈만 하므로 먼저 척후선을 보냈더니 적 이 있다는 신기전이 올라왔다. 이순신수사는 전선 4척을 포구어귀에 남겨 두어 후미를 경계토록하고, 전선을 일렬로 배 치하여 당항포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포구안에 정박하고 있었다. 이 때의 연합함대 지휘권은 한 사람에게 아직 통합되지 않고 이순신, 이억기, 원균 세사 람이 똑같은 수사자격으로 지휘권이 각각 독립되어 있었으나 실제전투에 임하면 그동안 실 전경험이 풍부하고 인격과 전략이 뛰어난 이순신수사가 자연 지휘를 맡게 되었다. 연합함대는 거북선을 앞세우고 뚫고 들어가 3도 전선이 교대로 집중공격을 가하니 그들 은 견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이 때 이순신수사는 생각하기를 왜적들을 더 이상 공격하면 그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날 것으로 판단하여 여러장수들에게 전령하기를 <우리가 짐짓 군사를 돌려 포위를 풀 고 약간 후퇴하면 저들이 반드시 그 틈을 타서 달아나려고 할 것이니 이 때 좌우에서 추격 섬멸하라>고 한 뒤 약간 후퇴하여 한쪽의 포위를 풀어 놓았다. 그랬더니 예상한데로 왜적들 은 3층 누각선을 날개처럼 옹호하고 한바다로 급히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수군함대는 다시 사방으로 포위하여 26척 왜적을 모조리 깨뜨리니 온 바다가 적의 시체로 가득하였다.

4) 율포 해전 (6월 7일)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한 전라좌우수군은 고성땅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천성, 가덕근방 을 수색하던 중, 율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가니, 적선7척이 부산으로 향하다가 우리 함대를 보고 달아났으나 율포 바깥 바다에서 모두 잡히고 말았다.

Sources :

http://bora.dacom.co.kr/~winwin3/p2/bat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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