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해전

Publié le par Tiger LEE

제 1 차 출동 (5월 4일부터 5월 9일까지 )

진해루 군사회의의 결정에 따라 전라좌수군은 5월4일부터 5월 9일까지 제1차 출동을 하 고 있는데, 이 기간에 전라좌수군은 옥포해전에서 적선 26척,합포해전에서 5척 그리고 적진 포해전에서 11척등 합계 42척의 적선을 당파 또는 격침시키고 있다. 제1차출동은 전과에서 도 대단한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보다도 우리전라좌수군에게 전쟁공포증을 극복하게 해주 었고, 해전에서의 자신감을 얻게 하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제1차 출동을 하기전에는 들려오는 소문이 너무도 과장되어 일본수군세력이 300척 600 척으로 생각되었기에 전라좌수군이 승리하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였고 그렇기 때문 에 진해루회의에서도 전라좌수영만을 지키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출전하고 보니 전라좌수군의 전승으로 끝났을 뿐아니라 세번의 해전에서 적선 42척믈 격침시키면서도 우리함대는 한척의 배나 단 한사람의 사망자도 없는 일방적 인 승리였으니 우리 수군의 의기는 하늘에 닿을 만하였다.


제1차 출동때에 출동한 전라좌수영 함대세력은 85척에 수군장졸 6천여명이었으며, 주 요함대 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제l차 출동의 함대세력이 85척이라고 하면 대함대같지만 내용을 보면 전투함이라고 할 수 있는 판옥선은 고작 24척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협선 16척, 포작선 46척으로 이런 배는 고기잡이배들로서 전투에는 참가할 수 없었고 보급품 운반과 연락에 사용된 것이 고작이었 다. 전라좌수영합대가 이런 배까지 동원한 이유는 되도록 함대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으 나, 실제 전투에 임해 보니 필요가 없어서 제 2차 출동때부터는 협선과 포작선은 한 척도 동원하지 않고 있다.

[제 1 차 출동도]

1) 옥포해전 (5월 7일)

임진년 5월 초4일 (양력 6월 13일) 새벽 여수를 출발한 전라좌수영함대는 남해도 남쪽으로 항로를 잡고 미조항끝을 돌아 소비포 앞 바다에서 첫 밤을 보내고 다음날(5월 5일) 원균과의 약속 장소인 당포에 이르렀으나 원균은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수사는 함대를 당포에 정박시켜놓고 경쾌선을 사방으로 보내어 원균을 찾으니 그는 하루가 지난 5월 6일 새벽에야 겨우 나타났다. 원균에게 그 동안의 전황과 왜적이 있는 곳을 물은 다음 5월 6일 아침에 당포를 출발하여 거제 송미포에서 밤을 새우고 6월 7일 새벽에 다시 출발하니 이날이 바로 전라좌 수군의 첫 전투일이었다. 6월 7일 새벽에 송미포를 출발하여 적선들이 머물고 있다는 천성 가덕을 향하여 거제도 동해안을 북상하는데, 정오쯤에 옥포앞바다에 이르니 1마장쯤 앞에서 항해하던 척후선으로 부터 신기전이 올라왔다. 옥포 포구안에 적선이 있음을 알게된 이순신수사는 여러 장수들에 게 엄명하되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과 같이 정중하라]고 전령한 뒤 장사진을 펴고 포 구안으로 쳐들어 갔다 . 옥포 선창에는 왜선 50여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왜적들은 육지에 상륙하여, 민가를 약탈 하고 양민을 살해하다가 전라좌수영함대가 쳐들어 옴을 보고서는 의아하는 표정 들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경험에 의하면 조선수군들은 그들의 접근만 보고도 모두 배를 버리고 도망 가기 일쑤였는데 어느 수군인지 모르나 감히 그들에게 정면으로 공격을 가해오는 함대를 보 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산기슭을 타고 도망가려고 하였다. 이순신수사의 공격신호가 떨어지자 전라좌수영함대는 죽을 힘을 다하여 왜적을 에워 싸 고 천지현황의 총통과 각종 완구를 쏟아대며 총공격을 가하니, 왜적들은 견디지 못하고 배 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우리함대에게 붙잡혀 격침되었다. 이 옥포해전에서 깨트린 배가 26척이나 되었음은 앞에 적은 바와 같다


2) 합포해전 (5월 7일)

옥포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영등포앞바다에 이른 전라좌수영함대는 여기서 밤을 지낼 계 획으로 군사들을 휴식시키는 한편 취사용 땔감과 식수를 길러오게 하는 등 한숨 돌리려는 오후 4시경에 왜적의 큰배 5척이 지나 간다는 척후장의 보고가 들어왔다. 이순신수사는 곧 함대를 이끌고 왜선을 쫓아서 함포앞바다에 이르니 왜적들은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 버렸다. 5척의 배를 격침시킨 이순신수사는 왜 적의 야간기습에 대비하여 밤을 타서 노를 재촉 남포앞바다로 이동한 후 밤을 지냈다.


3) 고성포해전 (5월 8일)

옥포해전에 대하여..
옥포대첩은 임진년 5월 7일 옥포만에서 이순신 장군과 휘하장병 그리고 지역주민이 합심하여 왜적과 싸워 왜선 30여척을 격파 시킴으로써 임진왜란 발발후 첫 승전고를 올린 곳이예요.

●시기 : 1592.5.7 ~ 8 (2일간)
●세력 : 조선- 91척 (전선 30척,협선 15척,포작선 46척)
왜 - 44척 (옥포 26척,합포 5척,적진포 13척 )
●전과 : 44척 격침,포로 5명 구출 및 전리품 획득,조선 1명 부상.
●의의 : 조선관군의 첫 승리,총통 대 조총의 해전,자신감 부여.임란초기 왜군의 일방적인 공략을 저지

Sources :

http://bora.dacom.co.kr/~winwin3/p2/bat1.html

http://www.njoyschool.net/chehum/textbook/chehum_text_10.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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