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ndo Kyungnaeryang (1592)
| 한산도대첩(경내량해전) / 1592. 7.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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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 왜선 59척을 가앉히고 9천명의 왜군을 섬멸 왜장 와키자카 구사일생으로 도망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대륙정벌의 야망을 꺾음.
왜 : 76척의 대 함대 조선: 56척 [전라좌수군 24척, 전라우수군 25척, 원균의 경상우수군 7척]
넓은 바다에서 왜적의 배와 왜 수군들까지 모조리 잡을 계획을 세움.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에 있는 긴 수로로서 길이는 약 4km이며 넓은 곳도 600m 를 넘지 않는 좁은 해협이라 전투하기에 매우 좁았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들의 행선에 지장을 줄 것이 분명했음.] 인출전포지계(引出全捕之計):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이끌어낸 뒤 완전히 봉쇄하다. 13척의 배로 적에게 소규모의 군세로 여겨지도록 하자 적장 와키자카는 이 13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전부라고 생각함. 유인작전으로 조선 수군은 조금씩 후퇴하고 왜적들은 한산도 앞 바다까지 뒤쫓아 옴. 이순신 장군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지금까지 후퇴하던 조선 수군의 전 함선은 일제히 뱃머리를 돌리고 학익진을 형성하며 적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 모든 장졸들은 온 힘을 다하여 총포와 불화살을 쏘아대니 왜적들은 기가 꺾이어 전의를 잃고 도망가므로 전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됨. 적선 73척 중에서 대형 층각선 7척, 대형선 28척, 중형선 17척, 소형선 7척으로 도합 59척이 격파되거나 불태워졌고 왜장 와키자카는 도망쳤다고함. 왜군의 전사자는 무려 9천여 명이나 되었음. 한산대첩의 가장 큰 의미는 왜군들의 수륙병진작전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고 또한 남해의 제해권을 확실히 장악하였음을 들 수 있음. 한산대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에 대한 사형선고이며, 그가 꿈꾸던 대륙정벌의 야망을 꺾어버린 해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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