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옥선의 화력

Publié le par Tiger LEE

판옥선의 화력은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간접적인 증거에 의한 불확실한 것들이 많다. 이 점 앞으로 추가 해야할 것들이다.
전통적으로 불화살 공격에 의존하던 우리 전함에 함포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 우왕 7년 최무선은 금강 어구에서 왜구의 배 500척을 화포로 공격, 분멸 시켰다. 또한 정지(鄭地)장군은 우왕 9년 전함 47척을 이끌고 남해 관음포에서 적선 120척을 격멸했는데 이는 탑재 함포를 가지고 해상에서 적함을 격멸한 것으로 최초의 함포에 의한 포격전으로 세계해전사에서도 최초라 할 만큼 의의가 크다. 이처럼 우리는 일찍부터 전함에 함포를 탑재 하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이미 함포를 사용한 우리나라는 조선조 세종때 화기의 전면개량 이후 더욱 강력한 함포를 가지게 된다. 우선 세종때에는 그동안 중국식화기를 주로 사용하던 것들을 국산화 하기 시작하여 천(天), 지(地), 현(玄), 황(黃)의 총통(화포)을 만들고 대장군포등과 요즘의 박격포라고 할 '완구'등을 만들게 된다. 또한 기존의 화약을 개량, 사정거리를 늘리게 되는데, 천자포의 경우 종전의 4 ~500보 나가던 것을 개량후 1000 ~ 1300보로 늘리게된다.

  • 포탄
    특히 조총이나 서양의 불량기들이 둥근 돌덩이나 철탄을 쏘게 된 것들로 폭발형 포탄이 아니기 때문에 파괴력이 크지 않은데 비해 우리의 경우 진천뢰라는 폭발형 포탄을 사용 할 수도 있었다.(임진란때 이순신도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또한 우리의 총통은 포탄 뿐만아니라 여러발의 화살이나 수백발의 수마석(물에 침식되어 둥글게 된 작은 돌)을 포탄 대신 사용 할 수 있었다. 이들 화살들은 일종의 산탄 효과를 낼 수 있어 화력을 배가 시킨다. 천자포의 경우 수마석 200개를, 현자포의 경우 100발을 발사 했다.
    이런 산탄 이외에 대형 화살도 포탄으로 사용 했다. 천자포용 으로 만들어진 장군전의 경우 직경 120mm, 길이 180cm정도에 쇠날개가 달려있으며, 현자포용의 차대전은 구경 60mm, 길이 160cm정도가 된다. 이런 류의 편전들은 일본측 기록에도 나오는데 조선의 화살은 직경이 한자(1尺)나 되어 우리배(일본전함)의 돛대가 한방에 부려지는 등 질 수 밖에 없다고 보고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장군전에 맞은 것을 이렇게 쓴 것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기가 장군전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런 무기가 없는 임진란 당시의 왜군은 이를 그냥 화살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현대의 연구에서 이를 일본의 과장이라고 무시하고 신뢰를 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하나 우리나라의 대포를 총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포탄 뿐만 아니라수많은 화살을 산탄처럼 쏠 수 있기 때문에 총통이라고 부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폭발형 포탄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마석 200개를 넣고 쏘는 천자포라면 조총 200자루와는 비교가 안되는 파괴력을 낼 수 있다. 당시 왜군은 조총의 밀집사격방법을 고안(도요토미 히데요시의스승인 오다 노부나가 가 단조산에서 왜의 사무라이를 농민병으로 대항할때 처음 썼다고 한다) 위력을 떨칠 때 였으나 아무리 밀집사격을 해서 명중률을 높인다 해도 유효사거리가 50 m 밖에 되지 않는 조총은 판옥선의 두꺼운 참나무 방패판을 뚫을 수 없다.
    또한 이런 수마석이나 대형 장군전 이외에 소형 화살에 가죽 날개를 붙여 총통에 여러발을 장전, 발사할 수 있게 만든 피령전도 사용 하였는데, 피령전은 대개 조금 작은포에 여러발을 넣어 쏘았다. 세종때에는 피령전을 8발씩 한번에 쏘는 8전 총통등이 있었다. 이런 화기 이외에도 요즘의 로켓탄에 해당하는 신기전등도 사용 하였다. 신기전은 화살에 작은 로켓을 달아 자체 추진력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적함을 불 살라 버릴 수 있었다.

    현존하는 명종, 선조때의 화포
    화 포 제조연대 전장(cm) 구경(mm) 소장처
    전자총통 명종 10년(1555) 130 128 육사박물관
    지자총통 명종 12년(1557) 88.8 100 육사박물관
    지자총통 중종 32년(1537) 91 95 일본
    지자총통 명종 12년(1557) 91 100 일본
    현자총통 명종 10년(1555) 76 67 일본
    현자총통 선조 1년(1568) 74 64 일본

    김재근 저 우리배의 역사에서 인용

    당시에 판옥선에 함포를 몇 문이나 탑재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러나 탑승원을 구분한 것을 보면 포수가 24 ~ 26명 정도이다. 이외에 화약을 장전하거나 포탄을 나르는 화포장이 10 ~ 14명이 있고, 활을 쏘는 사부가 18 ~ 22명이 있다. 그렇다면 대체로 약 20문 정도의 총통을 장비했을 것 같다.(순수한 짐작임.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그리고 정조대왕때 발간된 이순신장군의 전기인 이충무공전서에서는 '모든 총포구멍에 총포를 걸고 쉴새 없이 쟁여 쏜다'라는 말이 있으며 이때 통제영 거북선이라면 대략 70문의 총포혈이 있으니 탑승원들중 포수전원인 사격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대략 20문 이상의 함포와 소총(승자총) 약 20자루정도의 화력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판옥선은 주력함이고 거북선은 돌격선이었으나 거북선이 특별한 배가 아니라 판옥선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화력은 비슷했을 것이다.(이것도 추측)

    전선의 정원(숙종때)


    판옥선 귀선 병선
    격군 100 ~ 120 90 ~ 100 14
    포수 24 ~ 26 24 2
    화포장 10 ~ 14 8 .
    사부 18 ~ 22 14 .
    타공 및 기타 12 12 1

    김재근 저 우리배의 역사에서 인용

  • 판옥선의 추진
    동양의 경우 이미 송나라때 부터 다범장을 갖추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도 역시 돛대가 두개 이상인 다범장선을 신라때에도 운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볼때 백제식으로 만든 배나 신라의 장보고 청해진대사가 사용한 무역선들이 모두 돛대를 두개씩 장비한 다범장선이었다. 유럽의 경우12세기 말 한자동맹 도시들의 코크선들도 단순한 횡범 하나뿐인 조악한 선박이었던 점을 감안 한다면 매우 뛰어난 선박건조술과 조종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단적 증거가 된다.
    또한 범선의 돛은 대게 종범과 횡범으로 나뉘는데 서양선의 경우 횡범은 순풍을 받아 항해하는데 유리한 반면 역풍시 진행이 어렵고 종범은 역풍에 강하나 조종에 많은 인원이 소요된다. 특히 서양의 경우 횡범은 바이킹선이나 고대 그리스의 갤리선에 사용되었고, 종범은 베네치아등 후대 지중해 선에 많이 쓰였다. 이후 15세기 지리탐험이 시작되면서 비로서 이 두가지 종류의 돛을 갖춘 전천후 다범장선박들이 서양에 나타난다. 이에 비해 동양의 선박은 일찍부터 이미 여러개의 돛을 장비하고 항해했는데, 조선시대의 판옥선이나거북선 등도 돛대를 두개 정도씩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돛은 모두 현대 중국의 정크에서와 비슷한 일종의 러그 세일로 돛의 상하변에 가프와 붐을 달고 그 사이 2 ~3자 간격으로 바텐(활대)을 돛폭에 꿰어 시트라는 줄로 돛폭을 조종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돛은 조작하기 용이하고 종범과 횡범의 장점을 고루 갖춰 역행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우리나라 전함들의 역풍시 강점들은 이웃 중국측 기록에 자주 보이는데, 명나라 화옥(華鈺)의 해방의(海防議)에서 '조선의 귀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마음대로 하고 역풍이든 퇴조 때이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각선도본의 판옥선과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들은 모두 두개의 돛대를 눕혀 놓고 있다. 또한 앞에서 보인 삼도수군조련전진도의 천자 1호좌선의 경우 이물 돛대는 세워 돛을 펼치고 한판돛대는 눕혀 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판옥선의 경우 범주 이외에도 노를 이용하여 접전시의 기동성을 살렸는데, 이는 동양의 옛날 군선들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물론 서양의 경우에도 16세기까지 운용되고 스페인 무적함대에도 끼어 있던 갤리아스같은 배도 노역을 위주로한 요범선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판옥선은 기본적으로 범선이고 다만 역풍 및 전투시의 기동성을 위한 노가 장비되어 있었다. 특히 판옥선의 노는 큰노 한개를 여러사람이 함께 젖는 것이었다.(판옥선이나 거북선의경우 노 하나당 인원이 5명씩 젖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전함들은 주로 횡범 하나에 한사람이 젖는 작은 노가 여러개 달린 조악한 전함으로 임진란때에도 이런 배로 침입해 왔다. 팔왕자신송원에 보관되어 있는 왜선 모형을 보면 한사람이 젖는 노가 100개 장치되어 있고 돛도 하나 뿐으로 순풍에서나 쓸 수 있는 횡범이다.
  • Sources:

    http://bora.dacom.co.kr/~winwin3/p3/pan4.html

    Publié dans Imjin Wa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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