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에서의 판옥선

Publié le par Tiger LEE

임진왜란에서 첫 해전은 개전후 25일만에 있었던 옥포해전이다. 충무공은 5월 4일 출전하여 5월 8일 옥포만에서 적 선단을 포착 26척을 격침시켰다. 이때 상황을 충무공은 장계를 통해 선조에게 보고하게 되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옥포해전에서는 판옥선 28척과 협선 17척, 포작선(어선) 46척을 거느리고 출동 하였다. 이때 포작선과 협선은 전열함으로 볼 수 없으며 실제 전투시 에는 판옥선이 주력이 된다. 또한 판옥선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전투에 소요된 시간인데 장계를 보면 옥포앞바다에서 12시였고 전투를 마친뒤 영등포에 온시간이 오후 4시경이었으니 대략 해전에 소요된 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그사이에 우리측은 단 한사람의 부상병도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 시켰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 했는지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해전에 뒤이어 다시 같은날 저녁 5척을 또 추격 격침시켰고, 적진포에서 13척을 추가로 격침시켰다. 이것이 충무공의 1차 출동이다. 5월 29일 제 2차 출동에는 23척의 전선이 출동한다. 이때는 거북선이 3척 따라가게 된다. 이순신장군은 이때 이후 판옥선과 거북선을 함께 전선이라고 부르고 출격때에도 전선의 숫자만 장계에 보고하고 있다. 사천포에서 왜의 층루선 12척과 왜성을 쌓고 있는 왜군 400명을 분멸시키고 다시 당포에서 판옥선 만큼 큰 왜 층루선 9척, 중소선 12척을 모두 격침 시키고 왜장의 목을 베었다. 이후 당포 근처에 머물던 조선 함대에 이억기 수사가 전선 25척을 이끌고 합세하여 전선이 모두 51척으로 늘어난 연합함대는 당항포, 율포등에서 적선 72척을 격침시켰다. 다만 이때에는 전상자가 전보다 많아 사망자가 12명이나 되고 부상이 34명이나 되는데 이순신 함대에서 최초로 적의 칼에 의한 사망자도 1명 나오게된다. 3차 견내량 해전에서 적의 대형 층루선 35척, 중간배 17척 작은배 7척등 총 53척을 격침시켰으나 조선측은 부상자 118명에 사망 19명 뿐 침몰한배는 한척도 없다. 특히 부상, 사망자의 경우도 모두 포탄에 당한 것으로 이순신의 판옥선 함대는 마치 현대의 함대처럼 순수한 포격전으로 적을 무찔렀다. 특히 견내량은 마치 바다의 문경새재와 같은 지형으로 폭이 좁고 물살이 빨라 지협을 막아서는 전법으로 소수의 병력이 큰 병력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요새지인데 이순신장군은 이날 견내량을 내주고 대신 바다 한가운데에서 학익진을 벌려 적을 포위하여 인위적인 견내량을 만들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다시 안골포에 왜 수군장 구끼의 함대를 무너뜨리고 적에게 시위하였다. 이때 일본측의 임진왜란 전사 연구가 가다노의 추산으로는 견내량(한산도)에서 약 1천명 정도, 안골포에서 2천5명정도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삼가 적을 무찌른일로 아뢰나이다, 정광수, 정신 세계사.1989) 이상에서 처럼 판옥선으로 이루어진 조선 수군함대는 한척의 피해도 없이 왜 수군을 무찔렀는데, 이는 판옥선의 성능을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판옥선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판옥선이 이처럼 뛰어난 전함이었는데도 불구 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우선 판옥선이 가장 활약한 임진란 당시에 벌써 전선으로 불리워지고 있었으며, 이충무공 당신도 판옥선과 거북선을 한꺼번에 전선으로 통칭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당시로는 전열함이라는 의미로 전선이라는 명칭을 판옥선과 거북선을 함께 부를때 사용하기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개발 당시 일반 선체위에 방패판으로 집을 지은 것과 같다는 의미로 판옥선이라 불리웠지만 나중에는 그 기능이 전투함 이기에 전선(戰船)이라고 불리게된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는 명분론, 절개론, 예절론이나 고담준론적인 철학사상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서도 무기나 전술등의 실제 전력보다는 동래부사의충절이나 어느 부인의 절개등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비격진천뢰라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폭발형 포탄을 사용한 일이라든가 판옥선의 뛰어난 전투력 따위를 무시하고 지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뛰어난 전함도 전술이 잘못되면 칠천량의 원균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때도 원균이 인간성이 나쁘거나 간신이라서 진것은 아니다. 원균은 나름대로 훌륭한 장수 였으나(특히 그는 당시 일반적인 전법인 단병접전에 매우 능한훌륭한 장수였다) 그의 전술이 잘못되어 큰 패배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임진란 해전연구를 당시의 무기체제나 전술등의 연구는 제쳐두고 이충무공의 충절등 철학적인 조선시대적 연구에 매달려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판옥선이라는 훌륭한 전함을 잊고 지내온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충무공이 이런좋은 장비에 의지해 전쟁에 이긴 것이라면 누구나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오해를 할 수 도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미 임진왜란은 16세기 당시의 총력전이었다. 따라서 한두가지 요소 만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릴수는 없다. 게다가 이순신 함대 역시 지휘권이 원균 수사에게 이양된뒤 전술의 실패로 칠천량에서 거의 전멸하게 된 것은 함선만으로는 승패가 갈라지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충무공은 당시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전쟁을 홀로 준비하셨다. 특히 제 1차 출동때를 보면 다른 함대가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때 홀로 출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대비와 훈련이 되었었는데 이런 훈련과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도 장군의 기본 능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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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onthly.chosun.com/board/view_turn.asp?cpage=1&tnu=200309100049

    Sources :

  • 이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들
    • 우리배의 역사 (김재근, 서울대 출판부)
    • 한국의 배 (이원식, 대원사)
    • 거북선의 신화 (김재근, 정우사)
    •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정광수, 정신세계사)

    http://bora.dacom.co.kr/~winwin3/p3/pan5.html

    Publié dans Imjin Wa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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