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yu Kingdoms

Publié le par Tiger LEE

 

Fuyu/Fūyú (Buyeo 부여/Buyo/Puyŏ/夫餘) was an ancient ethnic group and its kingdom in northern Manchuria.
부여(夫餘)(늦어도
기원전 2세기 ~ 494년)는 삼국시대 한국의 조상으로 생각되는 초기 국가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북만주 일대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백제는 부여로부터 나온 국가로 생각된다.
Their manners and customs were mostly recorded in
Sanguo Zhi (Chronicles of the Three Kingdoms). The Fuyu were agricultural people who occupied the vastest plain in Manchuria. They already maintained a complex social structure. They named official titled after animals. Their capital was once considered to be Nong'an, Jilin Province but it would be near Harbin.
The origin of Fuyu is unknown but it seems to have already been known to China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Buyeo (?239 BC-494)
Buyeo is believed to have risen from the areas of Joseon in 2nd-3rd century BC. They claimed the inheritance of Joseon, and the rulers continued to use the titles of Tanje or the emperor. According to some accounts, Buyeo was divided into two countries, Bukbuyeo and Dongbuyeo, in 108 BC. Bukbuyeo was later succeeded by Goguryeo, but Dongbuyeo, ruled by the heirs of Emperor Haemosu, was shattered by Goguryeo in 22 AD. Dongbuyeo declined to meagre existence until 494, when they capitulated to Goguryeo.

Bukbuyeo (北夫餘) (?108 BC-?58 BC)
The rulers of Bukbuyeo retained the use the title of Tanje, or the emperor.

부여가 현재 확인되는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사기에서이다. 여기서는 연 (전국)이 오환과 부여에 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여는 고조선기원전 108년에 망하기 이전, 적어도 기원전 2세기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부여의 영역을 "장성 이북에 있다. 남으로 고구려와 접하고, 동으로 읍루, 서로 선비, 북으로 약수(弱水)에 접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에 따라 부여의 영토는 지금의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랴오닝 지방, 북쪽으로는 아무르 강(헤이룽 강)에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북부여의 도읍은 흘승골성인데, 이는 위서에서 고구려의 도읍이라 주장하는 바로 그 곳이다. 양쪽의 기록을 모두 따르자면 고구려가 부여 북쪽으로 가든가, 북부여가 동부여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는 다른 많은 기록들과 배치된다. 부여의 중심지를 쑹화강 일대로 비정한다면 위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부여의 역사가 해부루왕부터 등장하는데, 재상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나 해부루왕을 가섭원으로 옮겨가게 하고,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기원전 59년에) 북부여를 건국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쓰여 있다.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추측한다면, 원래 부여가 있었고, 거기서 떨어져 나온 집단이 동부여를 건국했다는 것, 그리고 북부여라는 명칭은 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원래 부여에 붙인 이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혹은 이 때의 해모수가 신진 집단으로 원래의 부여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여 새로운 국가, 즉 북부여를 세웠다고도 볼 수도 있다.
이상하게도
삼국유사에는 해부루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단군기를 인용하면서 부루주몽을 배다른 형제지간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모수는 아들을 쫓아내고 북부여를 건국하였고, 주몽해부루왕의 배다른 형제가 되며 금와왕은 삼촌을 기른 셈이 된다.
따라서
해부루왕의 아버지 해모수와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가 동일인물인지 그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해모수 혈통설은 고구려 동명성왕이 부여를 계승하는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동부여 해부루왕고구려 동명성왕이 배다른 형제가 맞다는 해석이다. 이는 후에 동부여 금와왕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을 태후의 예로 장사지냈다는 기록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그 이후의 북부여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중국측 사서에도 북부여와 동부여를 구별하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따라서
22년에 동부여가 완전히 망했다는 기록이 맞고 그 이후의 부여는 북부여를 말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북부여가 자연 소멸했거나 혹은 해모수 사후 그 손자뻘이라 할 수 있는 금와왕의 동부여에 병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혹은 해모수가 세웠다는 후대의 북부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거나, 동부여는 해모수가 아들인 해부루로 하여금 세우게 한 분국이었을 수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후에 해부루왕은 상제의 명령에 따라 나라를 동부여로 옮겨 가고, 동명왕이 졸본 땅에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졸본 부여를 세웠으니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 기록은 마치 동명왕이 졸본 부여, 즉 고구려를 세울 즈음에는 이미 북부여가 망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Dongbuyeo (東夫餘) (?
86 BC-AD 22)
The rulers of Dongbuyeo submitted to the overlordship of Bukbuyeo in
86 BC and thus used the title of Wang, which means king.
Fuyu began to make frequent contacts with China via the Xuantu commandery during the Eastern Han Dynasty. Although it raided Chinese borderland in 111, Fuyu paid tribute to Eastern Han in 120 and in the next year dispatched Prince Weichoutai (尉仇台) to Xuantu to save it from Goguryeo's attack. At the end of Eastern Han, Gongsun Du, a Chinese warlord in Liaodong, supported Fuyu to counter Xianbei in the north and Goguryeo in the east. After destroying the Gongsun family, the Kingdom of Wei sent Wuqiu Jian to attack Goguryeo. A squad of the third expeditionary force led by the Governor of the Xuantu commandery was welcomed by Fuyu. It brought detailed information of Fuyu to China. Since then Fuyu had been torn between big powers until its final overthrow. In 285 the Murong tribe of the Xianbei, led by Murong Hui, invaded Fuyu, pushing King Yilü (依慮) to suicide. Considering its friendly relationship with Jin Dynasty, Emperor Wu revived Fuyu and installed King Yiluo (依羅). Goguryeo's attack sometime before 347 caused further decline. Lost its stronghold near Harbin, Fuyu moved southwestward to Nong'an. Around 347, Fuyu was conquered by Murong Huang of the Former Yan. King Xuan (玄) and his people were captured. At the first downfall in 285, some people fled eastward to the land of Woju (沃沮) around modern-day Yanbian. It seems they who was called Eastern Fuyu by Goguryeo. They were invaded by King Gwanggaeto and may have been conquered by King Jangsu. A part of Fuyu seems to have lingered around Harbin under the influence of Goguryeo. In fact Fuyu paid tribute to Northern Wei in 457. They were conquered by the rising Wuji (Mohe) in 494 and the royal family defected to Goguryeo.
121년 고구려후한과 충돌할 때 부여왕자 위구태(尉仇台)가 현도성을 침공한 고구려의 군사를 공격하여 현도성을 구원한다. 중국의 북사수서는 이를 오해해 구태가 백제의 시조인 것으로 기록해 시조 구태설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북사와 수서의 오류이다.
167년에는 부여 왕 부태가 동한 본토와의 직접 무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현도성과의 무역 마찰이 생겨 선비족고구려의 묵인하에 현도성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이상의 기록을 신화나 잘못된 기록으로 보고, 부여가 동부여로 이동한 것이 훨씬 뒤인 285년선비족 모용씨(慕容氏) 침공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세기까지 번성하던 부여는 3세기 후반 북방의 유목민들이 중국 대륙으로 대거 남하할 때 이들로부터 많은 침략을 당해 급격히 쇠약해졌다. 285년선비족 침공으로 인해 왕 의려가 죽고 수도가 점령당하는 등 국가적 위기를 맞았으나 옥저로 도피했던 그 다음 왕 의라서진의 도움으로 나라를 회복하였다. 346년 전연의 침공으로 인해 심한 타격을 입은 부여는 결국 고구려에 항복하여 그 왕실만을 이어갔다. 그 뒤 부여 왕실이 기존의 고구려 영토 내부로 편입되면서 494년 완전히 멸망하였다.

Goguryeo and Baekje claimed that they were descendants of Fuyu. According to their legends, King Dongmyeong, the founder of Goguryeo, was a prince of Fuyu. Korean medieval history books say that Goguryeo was originally made of many chiefdoms, including Jolbon Buyeo(졸본부여, 卒本扶餘), the tribe of King Dongmyeongseong. Baekje officially changed its name to Nambuyeo (남부여, 南夫餘 "South Buyeo") in 538. It is well known the founder of Baekje, according to Samguk Sagi, King Onjo, the founder of Baekje, was a son of King Dongmyeong. Those titles suggest both Goguryeo and Baekje, two of the three kingdoms of ancient Korea, considered themselves as a branch or successor of Fuyu. So Korean historians consider Fuyu(Buyeo) as one of the ancestors of Korean.

졸본부여(卒本夫餘)
졸본부여삼국사기가 기록하는 고구려의 도읍지 명칭이나, 삼국유사에서는 도읍지를 졸본이라 칭하고 졸본부여는 그 자리에 세워진 나라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도, 졸본 부여의 왕이 주몽을 사위로 삼아 그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했다는 이설을 적어두고 있다. 백제본기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이 아예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삼국사기에서는 시조 비류설을 언급하면서, 졸본 지방의 유력자 연타취발주몽을 사위로 삼고, 주몽이 그 집안의 세력과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그 지방의 다른 부족들을 제압하면서 고구려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로 보아
졸본부여는 고구려의 전신 국가이거나 고구려의 별칭일 것이다. 그리고 이 때의 졸본부여는 고주몽이 건국한 기원전 37년고구려 이전에 많은 문헌에서 등장하는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졸본부여라는 이름은 고구려가 부여계의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남부여(南夫餘)
남부여백제 성왕이 새롭게 지정한 국호이다. 이 국호나 건국 신화를 보면 백제는 부여로부터 갈라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Sou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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